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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가난한 인터넷 옷가게 엄마, 중국을 울렸다

리스토리™ 2006. 11. 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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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찡하구려~
기사원문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1729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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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인터넷 옷가게 엄마, 중국을 울렸다
병상 엄마가 딸 키우려 문연 인터넷 옷가게
엄마 죽은 뒤 누리꾼 도움에 되살아나
하니Only 유강문 기자
» 유방암으로 숨진 쑤저우 샹쩐소학교 교사 저우리홍은 지난해 12월 딸을 위해 궁여지책으로 인터넷에 ‘마또우 꼬마의 작은 집’(摩豆寶寶小屋)이라는 어린이옷 가게를 냈다. 저우리홍이 인터넷에 접속해 옷가게를 둘러보고 있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그는 아픔이 잦아드는 10여분의 틈을 이용해 가게를 돌봤다. 병상에 누워 사는 그를 위해 부모가 컴퓨터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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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으로 숨진 한 엄마의 애닯은 모정과 누리꾼들의 온정이 빚은 한 편의 실화가 중국 대륙을 울리고 있다. 병상에 누운 엄마가 어린 딸을 키우기 위해 인터넷에 연 옷가게가 파산 직전 누리꾼들의 도움으로 되살아나고, 오랜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 전국에서 수천여명이 딸을 돌봐주겠다고 나선 이 이야기에 중국 사람들은 ‘올해를 감동시킨 가장 아름다운 사연’이란 헌사를 바치고 있다.

쑤저우 샹쩐소학교 교사 저우리홍은 2002년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의 나이 24살 때였다. 의사들은 그에게 앞으로 남은 삶이 6개월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사망선고’를 내렸다. 날벼락 같은 소식에 놀란 그가 병원을 전전하며 살 길을 찾는 동안 남편은 몰래 집을 떠나버렸다. 늙은 부모에게 몸을 의탁한 그는 두살배기 딸을 키우며 억척같이 삶을 이어갔다. 그러는 동안 그에겐 30만위안(약 3600만원)이라는 빚이 쌓였다.

» 저우리홍이 운영하던 인터넷 옷가게 ‘머또우 꼬마의 작은 집’. 머또우는 딸이 가장 좋아하던 만화영화에 나오는 신비한 콩의 이름이다.
지난해 12월 그는 궁여지책으로 인터넷에 ‘마또우 꼬마의 작은 집’(摩豆寶寶小屋)이라는 어린이옷 가게를 냈다. ‘마또우’는 딸이 제일 좋아하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신비한 콩의 이름이었다. 암세포가 퍼지면서 그는 두세 시간 간격으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그럴 땐 손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그는 통증이 잦아드는 10여분의 틈을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해 가게를 돌봤다. 그의 초인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게를 찾는 손님은 뜸했다.

이즈음 한 의사가 그의 딱한 사정을 인터넷에 올렸다. ‘왕지아난’이라는 아이디의 이 남자는 “가련한 엄마에게 희망을 주자”며 그의 옷가게에서 물건을 사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의 호소는 곧바로 인터넷에서 삭제됐다. 사이트 관리자가 옷가게를 선전하려는 상술로 오해하고, 가차없이 지워버린 것이다. 이 관리자는 훗날 <중국중앙텔레비전>과 인터뷰에서 “그의 호소를 사람들을 끌려는 광고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국인들, ‘올해를 감동시킨 가장 아름다운 사연’

» 저우리홍이 딸과 함께 편지를 읽고 있다. 저우리홍은 자신을 도와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일기에 남겼다.
지난 1월 ‘잉화’라는 아이디의 누리꾼이 그의 호소를 다시 부활시켰다. 그는 저우리홍의 병실을 직접 찾아가 그의 투병생활을 카메라에 담은 뒤, 이를 글과 함께 인터넷에 올렸다. 카메라에 비친 저우리홍의 안타까운 사연은 전국의 누리꾼들을 감동시켰다. 옷가게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이도 없는,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는 누리꾼들이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처음에 글을 삭제했던 사이트 관리자도 이 가게에 들러 어린이옷을 샀다. 그 역시 결혼하지 않은 이였다. 어떤 누리꾼들은 저우리홍의 병실을 직접 찾기도 했다.




그러나 저우리홍은 물건이 동났다며 주문에 응하지 않았다. 옷이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동정심으로 물건을 사는 이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최근 <상하이위성텔레비전>과 인터뷰에서 “옷을 사려는 이들 가운데는 어렵게 번 돈을 쪼개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며 딸이 고개를 저었다고 말했다. 당시 저우리홍은 일기에 “나는 지금 한 누리꾼이 가져온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그는 방금 척추수술을 받은 남편과 함께 차로 40㎞를 달려왔다. 눈물이 빗물처럼 그치지 않는다”고 썼다.

» 저우리홍이 침대에 누워 전국에서 날아든 격려의 편지를 읽고 있다.
저우리홍은 지난 3월 가게 문을 닫았다. 더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안 <쑤저우텔레비전>에서 그를 대신해 가게를 운영할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10여일 만에 전국에서 수백명이 손을 들었다. 최종적으로 4명의 자원봉사자가 선정됐다. 이들 가운데 하나인 꺼우친화는 “저우리홍이 딸의 손을 잡고 ‘내가 하루만 더 살 수 있다면, 그 하루를 너에게 다 주고 싶다’고 말했다”며 눈물을 떨궜다. 이들을 딸이 크면 가게를 고스란히 물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4월8일 저우리홍이 결국 눈을 감았다. 누리꾼들은 이제 그를 대신해 딸을 돌봐줄 엄마들을 찾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1300여명이 엄마가 돼주겠다고 자청했다. 개중에는 외국에 사는 누리꾼도 있었다. 홍콩에 사는 한 누리꾼은 “작은 마또우(저우리홍의 딸을 가리킴)야! 힘을 내렴! 내가 너를 돌봐줄께”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지난 6월1일 어린이날엔 5명의 누리꾼 엄마가 직접 딸을 찾기도 했다.

저우리홍의 장례식이 열리던 날 전국에서 수많은 누리꾼들이 조의를 표했다. 저우리홍의 부모는 딸의 장례식에서 모은 18만위안 가운데 절반을 떼어내 딸의 처지와 비슷한 엄마들을 돕기 위한 자선기금을 만드는 데 쓰기로 했다. 그것은 저우리홍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베이징/<한겨레> 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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